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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날 : 2022. 11. 12 . 둘째 토요일. 날씨 : 맑음
간곳 : 성주 별고을 둘레길 ( 성밖숲 - 성주 역사테마공원 - 봉두산 )
위치 : 경상북도 성주군 성주읍
참가인원 : 홀로
교통 : 승용차 ( 성주읍 이천변 임시주차장 )
성주 별고을 탐방로 안내도
성밖숲- 쌍충 사적비 - 성주읍성북문 - 관천대 - 성주사고 - 시비공원~ 성밖숲
별고을 문화 탑방 코스:
이천 변 임시주차장 - 성밖숲 - 경산교 - 쌍충 사적비 - 심산 기념관 - 성산교 - 군청 -
청사도서관 - 성주 테마 역사공원 - 임정사 - 성주 경찰서 - 이천둑길 - 이천 변 임시주차장
(답사 거리 7.5 km 소요시간 3시간 )
성주읍 소개
성주읍성
현재 성주읍의 중심부인 경산리, 예산리, 성산리,백전리 일대에 축조된 것으로 추정
성주목읍지에 따르면 읍성둘레는 6,755척으로 약 2.1Km에 달하는 대규모 읍성에
해당하며 평면형태는 옛고지도자료 및 최근의 지표조사보고서 등을 통해 볼때
장타원형이었을 것으로추정된다고 안내문에서 소개하고있다.
성밖숲
도시근린공원 성밖숲 수해를 예방하기 위해 조성된 수해방비림으로 수령이
약 300~500년 정도로 추정되는 천연기념품 왕버들나무가 4- 5월이면
연두빛으로 물들이고, 8월이면 야생화 맥문동의 보랏빛으로 장관을 이루는 등
유수한 생태자원이 풍부한 곳이다 .
성주읍성 역사테마공원
경북 성주군 성주읍 예산리 516
성주의 옛모습을 재현한 공원으로 성밖숲과 함께 군민들의 휴식처이자 성주의 랜드마크입니다.
조선왕조실록을 보관한 조선전기 4대사고중 하나인 성주사고와 조선시대 전통연못인
쌍도정 그리고조선시대 옛모습을 그대로 복원한 성주읍성 북문과
성곽이 공원의 중심입니다.
성주 별고을 둘레길
성주읍 주요 사적지을 연결하는 별고을길
성밖숲에서 출발하여, 읍내에 있는 쌍충사적비, 성산관, 심산기념관, 봉산재,
성주 읍성 , 향교, 이천변으로해서 성밖숲으로 한바퀴도는 1, 2코스는 도보길이고
3코스는 차량투어로 소개하고있다.
11월 둘째주 토요일
오전에 국가검진공단에서 실시하는 건강검진을 받고 성주읍 별고을 둘레길 답사을 하기위하여
혼자서 차을 몰고 성주읍 성주전통시장부근 이천변에 12시25분 도착한다.
임시주차장에 주차을 하고
성밖숲 방향으로
이천변으로 내려가
자전거길옆 산책로따라 성밖 숲 방향으로 간다.
여러 기념비들이 서있는 성밖숲 공원입구
백년설 노래비
나그네설음을 부른 백년설은
성주에서 출생하여 성주 농협 보통학교 을졸업했다고한다.
시계탑위에 현재 시간 12시 40분
성밖숲
1999년에 국가지정 천연기념물 제403호로 지정돼 보호 관리되고 있는
성밖숲은 성주군의 대표적인 관광지이다.
다양한 역사적 스토리를 간직하고 있는 성밖숲은, 매년 열리는
성주생명문화축제의 축제 장소이기도 하다
맥문동
성주 보건소을 지나며는
성주 경산교앞에서
경산교 입구 이정표
심신기념관과 쌍충 사적비방향
우측으로 도로을 건너 가며는
성주여고앞 에서
도로건너편에
쌍충 사적비 가보이고
쌍충사적비(雙忠事蹟碑)
성주읍성 서문이 있던 자리
1974년 경상북도 유형문화재로 지정
임진왜란 때 성주목사로서 성주성을 지키다가 순국한 충의공(忠毅公)제말(諸沫)과,
진주성싸움에서 큰 공을 세우고 장렬히 전사한 조카 제홍록(諸弘祿)의 공을 기려 세운 비이다.\
[출처: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쌍충사적비(雙忠事蹟碑))]
쌍충 사적비에서 이정표 방향으로 바로 넘어갔다가 심신기념관을찾아 한참을 해매고
여고사거리에서 군청방향으로 조금내려가며는 되는데
벽화가 그러진 빌라건물뒤편에
성주 성산관
1980년 경상북도 유형문화재로 지정되었다. 건립연대는 알 수 없으나 『교남지(嶠南誌)』
성주편에는 객관으로 사용된 것으로 나타난다.
심산 기념관
독립운동가이자 성균관대를 설립한 교육자 김창숙(1879~1962)의 뜻을 기리기 위해
후손과 지역 유림이 세운 기념관이다.
성주군청 앞에 남부 내륙 철도 성주역 열차 모형
성주 공영 주차장 앞 사거리
임정사 방향골목으로 들어가
우측에 성주 천주교회
역사테마공원 방향으로 올라가며는
청사(靑史)기념관(청사도서관)
청사 서석준(1938∼1983) 부총리 겸 경제기획원 장관은 성주 출신으로서 대통령 동남아
외교순방 수행 중 미얀마 아웅산국민묘지에서 순국하였으며,
그 분을 기리는 도서관이 1987년에 이곳에 세워졌다고한다.
성주 읍성 서문입구 좌측에
충헌각(忠獻閣
읍성안 북문아래 있는 이 충헌각(忠獻閣)은 조선조 신임사화로 유배됐던몽와
김창집(1648~1722) 선생을 기리는 비각으로이 비각은 6.25 전쟁 때
파괴됐다가 최근에 복원되었다고 한다.
성주읍성
고려우왕6년(1380) 토성으로 축성되었으며 조선 중종15년(1560) 석성으로 개축하였고,
임진왜란 발발 한해전인 선조24년(1591)에는 성문이 축조되었으며
읍성 북문 성지문 민락루(民樂樓)
성주읍성은 현재 성주읍의 중심부인 경산리, 예산리, 성산리,백전리 일대에 축조된 성으로
현재의 성주읍성은 북문을 포함한 270m구간을 전문가 자문을 거쳐 2020년 재현함.
( 민락루 성주읍성 안내판 설명)
성주 읍성 북문 성지문 입구에서 필자 / 산새
성주역사테마공원
성주의 옛 모습을 재현한 공원으로 성밖숲과 함께 군민들의 휴식처다.
조선왕조실록을 보관한 조선 전기 4대 사고 중 하나인 성주사고(星州史庫)와 조선시대
전통연못인 쌍도정(雙島亭), 그리고 조선시대 모습을 그대로 복원한 읍성 북문과 성곽이
성주 역사테마공원의 중심이다
성주사고 실록각
성주읍성은 일제강점기를 거치며 임정사앞 동북쪽 성곽의 흔적만 일부 남게 되었는데
2020년10월에서야 다시재건하였으며
성주(星州) 역사 문화의 전성기인 옛 현장을 재현 복원한 성주읍성
성주읍성 북문 민락루
야자매트 보행로로 건너가
우측으로 내려서며는
성주사고(史庫) 실록각
조선 세종21년(1439)에 설치되어 중종33년(1538)에 화재로 불타 폐지되었는데
조선의 주요한 역사기록물을 보관 관리하던 창고의 하나로써 실제로 실록이 보관된
시기는 1445년으로 당시 실록각은 관아에 인접해 있었던 것으로 봄.
그후 1540년에 실록을 다시 편찬하여 2층누각식으로 재건된 실록각에
보관하였으나 임진왜란으로 다시 소실된 후 성주사고는 더이상 재건되지 못하고
현재 흔적조차 찾을수 없다고 함.
실록각(實錄閣) 전경
실록각은 조선시대 춘추관(春秋館) 안에 왕조실록을 보관하던 집을 말한다.
실록은 편찬이 완료되면 사고(史庫)에 봉안하는데, 성주군에서는 세종 때
성주에 있었던 실록각을 재현한것이다.
계단으로 2층에 올라가며는
조선시대 국가의 주요한 역사한 역사 기록물을 보관, 관리하던 창고의 하나.
이층 에는 전시관이 마련되어있다.
성주사고의 역사와 조선왕조실록이 편찬된 과정, 봉안한 일 등을 자세하게 알려주고 있습니다
(星州史庫). 성주李氏시비공원.
이숭인 '승사(僧舍)', 조선 개국공신 이직 '오로시(烏鷺詩)', 까마귀 검다하고 백로야 웃지마라....)
이조년의 '다정가', 백년설(본명 이갑룡)의 '번지 없는 주막' 노래비 등 17인의 시비(詩碑)가
설치되어 있으며,
충헌각(忠獻閣)
인조26년(1648)에서 경종2년(1722)까지의 조선조 문신으로 본관은 안동, 자는 여성, 호는
몽와, 시호는 충헌인 김창집 선생이 세제 연잉군(후일 영조)의 대리청정을 둘러싼
신임사화(1721~22)때 역모로 누명을 쓰고
거제도에 유배되어 위리안치되었다가 성주 요도에 이배되어 사사되신 것을
1750년 성주고을의 뜻있는 선비들이 관아에 주청하여 선생의 충의를 불망하고
원혼을 위로 추모하기 위하여 수명된 자리에 수명 유허비각을
관리 보존해 오다가 6.25전쟁으로 소실된 것을 2006년 이자리에 복원
(충헌각 앞 해설판에서).
봉산재(鳳山齋)
성주의 옛관아뒤에 수려하게 솟은 봉두산 자락의 봉산재는 성주이씨 중흥시조
농서군공 휘 장경 선조께서 터를 잡으시고 다섯아들을 모두 과거에 급제시켜다고한다.
숭덕문(봉산재 대문)
봉산재(봉산재는 성주이씨 중시조인 농서군공(隴西郡公) 이장경(李長庚)이 살았던
옛 집터에[ 세워짐 자자손손 가문을 번성하게 한 자랑스런 유허지임. 1922년에 건립된 봉산재는
해마다 단오절에 지역유림들이 향사를 봉행해 왔으며 그후 쇠락한 봉산재를
새롭게 중건하여 오늘에 이름.
관천대(觀天臺)
천문관측시설로 일명 간의대(簡儀臺)라고도 한다.
성주 관천대(觀天臺)는 읍성 제일 높은 곳인 봉두산 정상에 설치하였다.
성주관천대는 서울 창경궁에 있는 관천대를 본보기로 세종대왕의 명으로 조성된
성주사고, 세종대왕 자태실과 더불어 "나라는 백성을 근본으로 삼고 백성은 먹는 것을
하늘로 삼으니 농사는 의식의 근원이다"고 했던 세종대왕의 백성을 사랑하는
마음을 담아 이자리에 조성하였다고 한다. (자료 출처 : 성주군)
봉두산 53.4m
봉두산표시석 관천대 앞에서 필자 / 산새
관천대 에서 당겨본 성주 향교
읍성이 끝나는 오른쪽에 임정사 사찰이자리하고있다.
봉두산 임정사(林淨寺)
한국불교태고종 전통사찰로 1890년(고종 27)에 감응사 주지 우산(牛山) 스님이
창건한 사찰
석조관세음보살입상이 서 있고 뒤로는 극락전
임정사에서 주차장옆 도로로내려가
큰도로따라
성주 경찰서앞으로 지나가고
이천 둑방길로 나가
이천변 산책길따라 성밖숲으로 가다가
우측계단 방천길로 올라가며는
별고을 쉼터 을 지나자말자.
임시 주차장에도착 차을 몰고 귀구하였다.
오늘 답사코스을 확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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