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고향 문화재 을 찾아서
조성인(趙性麟)의 효자각 (孝子閣)
위치 : 경북 고령군 성산면 오곡리 산 112번지
오곡리 마을 :
조선 선조 때 조일도 형제가 함안 지방에서 과거를 보기 위해 한양으로 올라가다가 이곳에서 하룻밤을 묵게 되었는데 꿈에 학이 날아와 앉는 것을 보고 정착하게 되었다 한다. 이 마을에는 오전에만 햇빛이 들기 때문에 오실, 오곡이라 한다. 현재, 오곡리는 오곡(午谷), 신곡(新谷), 뱃가라 부르는 3개의 자연부락 로 구성되어 있고 마을 면적 총 3880천㎥ (농지 : 438, 임야 :2552, 기타 : 890) 총인구 : 109명(남 : 48명, 여:61명) / 65세 이상 : 37명 세대수 : 53 가구 (단독 : 25, 다가구 : 28) ( 출처 :성산면 마을유례)
4번 지방도 성산면 득성에서 삼대리을 지나 개진면으로 연결되는 휘골산 끝자락 고개를 넘어서서 오곡리 마을 조금 못미처 우측 도로변에 아주 오래된 비지정 문화제 함안 조(趙)씨 웃대의 孝子閣과 孝烈閣이 자리하고있다.
효자각(孝子閣)
효자 소은처사 효행 약기 (孝子 蘇隱處士孝行 略記)
공의 휘(諱)는 성린(性麟) 자(字)는 현서(玄瑞) 호는 소은(蘇隱)
본관은 함안(咸安) 이다.
서기1858년 ( 이조 철종병진) 년 10월 5일 빈가에서 출생
어릴적 부터 총명 영민하고 효심이 지극 하였으며 글 읽기를 즐겼다.
서기 1870( 고종 경인)년 경주 초택 백일장에 2회 특선 한바있는 한학자이며 후진양성에 힘섰다. 서기 1900년 여름 모친이 학질에 걸려 사경에 이르자
사람에 살점으로 조약하면 좋다는 명의(名醫)의에 말을 듣고 아무도 몰래 허벅지 살점을 베어 조제해 드려 완치를 보게 돼였다. 당시 공에 효행을 나라에 품신치 못하여 안타깝게 여기던 차 1945년 사림(士林)에 주창으로 이곳에 효자비를 세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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효열각(孝熱閣)
효 열부 나주 임씨 효열 행 약기 ( 孝 烈婦 羅州 林氏 孝烈 行 略記 )
효 열부(孝烈婦) 나주 임씨(羅州林氏)는 사인(士人) 함안 조상벽(咸安 趙相壁)의 처요. 현감 중수(重秀)에 딸이다. 서기 1637( 이조 인조15 )년에 출생 18세에 조씨와 혼인하여 노시부모를 지성으로 봉양하면서 추호도 시 부모님의 뜻에 어긋남이 없었을 뿐 아니라 남편이 난치병으로 오래 고생하다가 사경에 이르자 하늘에 빌고 손가락을 짤라 피를 입에 드리우니 효혐이 있어 수 개월더 연명하다가 결국 운명하자 3년상을 마친후 묘소 옆에서 목을 매어 죽으니 향방에서 효열부라 칭송하고 나라에 상소하여 서기1758( 영조 34 무인)년 봄에 예조에서 정려(諪閭) 를 명(命)하였다,
열부 진주 하씨 열행 약기 ( 烈婦 晋州 河氏 烈行略記)
열부(烈婦) 진주 하씨(晋州河氏)는 사인(士人) 함안 조정필(咸安 趙廷弼)의 처요. 진사(進士) 서천(瑞千) 의 딸이다. 서기 1632년 (이조 인조10 )년에 출생하여 서기 1649년 18세에 시집와서 2 년만에 (1651년) 남편이 중병에 걸리자 지성으로 간호 하였으나 백약이 무효라 끝내 세상을 버리니 슬피 곡(哭) 하며 3년 상을 마친후 또 시아버님 상을 당하여 3년상을 마친후 독약을 마시고 남편에 뒤를 따르니 지방사림(地方士林)에서 그 정절(貞節)을 기리기 위해 조정에 상소하여 서기1758년( 영조 34 무인 )년 봄에 예조에서 증려(정閭) 를 명(命) 하였다.
사진 : 산새 (우종희) / 성산면 고탄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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