망운산 화방사
위 치 : 경남 남해군 고현면 대곡리 1448
종파 : 대한불교 조계종 제13교구 본사인 쌍계사 의 말사
망운산 기슭에 자리잡은 화방사는 신라 문무왕 때 원효대사가 세웠던 연죽사에서 비롯되었다.조선시대 1636년에 지금의 자리로 옮겨 넓혀짓고 화방사라 불렀다.
화방사는 남해 제일봉인 망운산으로 곱게 난 아스팔트를 따라 오를 수 있어 진입이 매우 수월한 편이다. 남해대교에서 19번 국도를 타고 들어오다가 이어마을에서 오른쪽 길로 접어들어 다시 3km 정도 가다보면 고찰 화방사를 만날 수 있다.
망운산 화방사는 1981년 화재로 소실된 이충무공 목판 묘비가 복원되어 있고 충무공 이순신과 함께 임진왜란때 순국한 장병들의 영혼을 모시고 제사를 지냈던 호국사찰이다.법전 사물이 모두 갖추어져 있는 화방사 주변에는 천연기념물인 산닥나무 자생지가 있어교육의 장이 된다.
현존하는 건물로는 대웅전 응진전 명부전 칠성각 일주문 채진루 등이 있다. 이 중 대웅전과 마주보고 있는 채진루는 경상남도 문회재 자료 제152호로 지정되었다.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좌측 돌다리를 건너 일주문으로 향한다.
망운산 화방사 일주문 여초 김응현 선생의 일필휘지가 오직 한마음, 일심으로 정진하라는 일주문
안쪽에서본 일주문 일주문 돌계단을 오르면 좌측으로 공덕비와 부도가있고 채진루 맞은편에는 천연기념물인 산닥나무 자생지가 있다.
공덕비와 부도 부도는 하나만 외로이 자리를 지킨다. 공덕비가 왼쪽서있고 좌측으로는 산닥나무 자생지 도지나 우측에 작은 계곡을 건너면는 화방사 종무소
감로수
화방사 채진루 (花芳寺 採眞樓)
채진루는 일주문을 통해 경내로 들어서기 전에 대웅전과 마주보고 있는
건물로,1638년에 계원대사가 지었다.
채진루는 대웅전 앞마당으로 출입토록 대웅전과 마주보게 배치되어 있다. 마당에서 출입이 쉽도록 누각바닥이 마당과 같은 높이로 만든 이 누각은 정면 5칸 측면 2칸의 오량(五樑)구조로된 2층 맞배지붕집이다.
세부장식이 조선말기 수법을 잘 보여주고 있다. 복원한 "이 충무공 충렬묘비" 목판비문이 서 있다.
대웅전 대웅전은 본래 보광전이었으나 보광전이 1981년 10월 1일 불에 타 사라지자 1984년 12월 29일 복원하면서 전각 이름을 바꾼 것이다.
1998년에 축조한 9층 석탑
명부전 과 조사전 중심에 두고 좌우에, 특히 조선조에 많이 유행하였던 부불전(副佛殿)인 명부전과 응진전을 배치한, 이른바 3불 전형(三佛殿型)배치를 보이고 있다.
응진전
범종루에는 반야범종과 함께 법고 운판 목어 등 사물이 좌우에 있는데, 사물을 모두 갖춘 곳이 드문데다 사물의 청아한 소리가 아침 저녁의 예불시간에 산사의 적막한 기운을 쫓아내고 있어 예사롭지가 않다
약사여래대불 ㅡ 천불봉불 약사여래대불뒤로 보이는 삼성각 삼성각 삼성각 내부에는 칠성탱화,독성탱화,산신탱화 가있다. 약사여래대불앞에서 대웅전 배경으로 설선당
후문에서 바라본 화방사
화방사를 나오면서 증거용으로 주차장 약수터
유물로는 옥종자(玉宗子)·금고(金鼓)·이충무공비문목판(李忠武公碑文木版) 등이 유명하다. 이 중 옥종자는 절을 짓고 불상을 모실 때 밝혔던 등잔으로 한번 불을 붙이면 꺼트려서도 안되고, 일단 꺼진 뒤에는 다시 불을 붙일 수 없다고 전한다.
1234년(고려 고종21) 이전에 불을 붙였다가 1592년 임진왜란이 일어난 뒤 꺼졌다. 이런 까닭에 다시 불을 붙이지 못하여 지금은 사용하지 않는다. 금고는 조선 중기 때의 유물로 범자(梵字)가 사방에 양각되어 있으며, 이충무공비문목판에는 모두 2천자가 새겨져 있다. 이밖에 〈현판기문〉 〈완문절목〉〈선생안〉 등의 고문서가 전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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